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통증이 발생하면 원인 질환부터 밝혀내야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처방을 받은 진통제만 복용하고 진통제를 거르거나 아무 진통제나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60대 초반 여성 강순희(가명) 씨는 최근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허리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강 씨는 다시 병원을 찾아 검사했지만 수술 부작용은 아니었다. 이후 통증은 더 심해졌다. 엉덩이를 지나 다리로까지 번졌다. 5분도 채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강 씨는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를 찾았다.
정밀 검사해 보니 극심한 척추관협착증이 발견됐다. 장비를 투입해 유착 부위를 벌려 줬고, 통증 완화 약물을 투입했다. 이 치료 후 강 씨의 통증 점수는 8점(가장 아프면 10점)에서 1점으로 줄었다. 1시간 이상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됐다. 문 교수는 “통증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가장 먼저 통증 원인이 되는 질병을 찾아내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씨가 허리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오인하고 진통제만 먹었다면 통증은 더 악화했을 테고, 척추관협착증은 더 심해졌을 거란 뜻이다.
● 통증, 이것만은 알아두자
통증 자체는 병이 아니다. 우리 몸이나 정신에 손상이 발생하면 신경계가 그것을 포착해 뇌에 전달한다. 그러면 뇌는 불쾌감을 느낀다. 그게 바로 통증이다. 그러니까 통증은 건강 이상 증세이자 경고등인 셈이다.
통증은 원인에 따라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가장 흔한 침해성 통증이다. 어떤 병에 걸렸을 경우 과도한 자극에 노출되면 신경에서 뇌로 통증 신호가 전달된다. 그러면 뇌는 통증을 느낀다. 관절통이나 허리 통증이 대표적이다. 강 씨가 이런 경우다.
둘째가 신경병성 통증이다. 신경 자체가 다쳐서 발생한다. 통증 수용체가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았는데도 통증을 느끼거나 작은 통증을 극심한 통증으로 느낀다. 대표적인 것이 대상포진 후에 나타나는 통증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 조직을 손상시킴에 따라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셋째, 발병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통증도 있다. 이 경우 대뇌 혹은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있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통증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눈다. 보통은 3개월을 기준으로, 그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만성으로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만성 통증은 질병으로 규정해 따로 치료해야 한다. 가령 손가락을 베거나 다쳤다면 급성 통증이 생긴다. 하지만 2주 내외로 상처가 아물며 통증도 사라진다. 그 후로도 계속 아프다면 만성 통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에 따른 통증도 만성 통증이다. 문 교수는 “다른 통증과 달리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통증은 완치 개념이 없다.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를 한다”고 설명했다.
● 통증 치료는 질병에 맞게
30대 초반 여성 이정민(가명) 씨는 6개월 전 일본 의료기관에서 피를 뽑다 손끝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통증이 시작됐다. 손이 붓고 빨개졌다. 피부가 벗겨지는가 싶더니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손톱과 털이 지나치게 빨리 자랐다. 관절은 굳어 버렸다. 이 씨는 귀국한 뒤 문 교수를 찾았다.
문 교수는 채혈 과정에서 신경이 일부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병명을 찾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란 진단을 내렸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희소 질환이다.
3개월 동안 신경을 차단하는 치료를 시행했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혈관은 수축하고 통증은 심해진다. 이를 막기 위해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것. 정맥주사도 놓았고 마약성 진통제도 투여했다. 하지만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문 교수는 척수 신경 자극기를 이 씨의 몸 안에 이식했다. 극심한 통증이 발생할 때 이 전기 장치를 가동하면 자극 효과를 발생시켜 통증을 억제한다. 이렇게 6개월간의 치료 끝에 이 씨의 통증 점수는 8∼9점에서 2∼3점으로 떨어졌다.
문 교수는 “제대로 병을 밝혀냈기에 통증 처치가 가능했다. 통증 치료는 원인 질환을 얼마나 밝혀내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가령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문 교수를 찾은 70대 남성 박지석(가명) 씨의 치료법은 완전히 다르다.
박 씨는 이마에 대상포진이 걸렸다.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속하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입해야 하는데 명절 연휴라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 치료 시기가 좀 늦어진 데다 당뇨병으로 혈당 조절도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통증이 심해졌다. 박 씨가 느끼는 통증 점수는 9점 이상이었다.
문 교수는 항경련제와 항우울제를 낮은 용량으로 투여한 뒤 단계적으로 용량을 올렸다. 통증이 신경에 전달되지 않도록 말초신경을 초음파로 일시 차단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통증이 점점 줄어들었다. 문 교수는 약 용량을 줄였고, 대상포진 예방 백신도 맞도록 했다. 이후 박 씨의 통증 점수는 1∼2점으로 떨어졌다.
● 원인 모르는 통증 치료는?
섬유근육통은 전신에서 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수면 장애나 피로감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소한 통증도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통증 민감도가 높은 것. 이런 경우 통증 치료는 어떻게 할까.
40대 초반 대학교수 민현지(가명) 씨는 오랫동안 무용을 했다. 무용을 하다 여러 차례 다쳤고, 학교의 경쟁적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운동만 하면 근육이 뭉치는 것 같았다. 초반에는 마사지로 풀어주면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없었다. 통증은 더 심했다. 아침에 몸이 굳기도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두통까지 심해졌다.
문 교수는 섬유근육통으로 진단하고 관련한 약을 처방했다. 곧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 교수는 새로이 수면 치료를 실시했다. 뇌로 올라가는 통증의 신호를 조절하고, 뇌가 통증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약을 투입하는 치료다. 부작용으로 환각 효과가 있어서 수면 상태에서만 투입한다. 이어 보톡스 치료를 통해 두통도 개선했다.
민 씨는 통증 점수가 다소 줄었다. 하지만 극적으로 통증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문 교수는 “통증을 받아들이는 심리 문제도 있다. 민 씨의 경우 통증을 과도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병행할 때가 많다. 최근 들어 병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통증 환자가 꽤 많아졌다. 문 교수는 “수면 장애, 기분 장애, 불안 장애 모두 통증을 유발한다. 이럴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함께 받는 게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진통제 먹을까, 참을까?
통증 치료에 가장 많이 쓰이는 약물이 진통제다. 침해성 통증일 때는 소염제를, 신경병성 통증일 때는 항우울제나 항경련제를 투입한다. 평소에는 복용하지 않다가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때만 먹는 약도 있다. 패치 형태 진통제도 있고 마약성 진통제도 있다. 그 어떤 진통제든 환자가 임의로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 교수는 “통증 양상이나 지속성 등을 고려해 진통제를 처방한다. 그런데도 별 차도가 없다면서 처방된 진통제를 먹지 않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정반대로 아프다면서 무작정 아무 진통제나 먹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 어느 쪽이든 통증 치료에는 방해가 된다. 문 교수는 “통증 원인에 따라 가장 적합한 약을 찾아야 한다. 환자가 적극적으로 통증 양상을 설명해야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노인 통증의 경우 진통제로는 해결이 안 될 때도 많다. 관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근력이 떨어지는 대신 살이 찌면 통증은 더 악화한다. 술, 수면 장애, 혈당도 통증을 악화하니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