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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
금원산종달새
2018/03/13 15:01 (183.104.***.196)
댓글 0개 조회 1,674 추천 9 반대 2

언어의 유희 

배부른 소리인가요

잠깐 차한잔 하신다는 의미로다가 읽어봐 주시길....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3/03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8/03/02 17:14

지난 1월에 뉴욕의 혹한을 피해 성하의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녀왔다. 장시간의 비행과 크루즈에서의 여가를 위해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코스모스 (Cosmos)'를 들고 갔다. 완벽한 선택이었다. 그곳은 지도상으로 보면 아시아와 미국사이 남반구에 위치해 있다. 분명 비행기는 날아가고 있는데 시간은 제자리에 있고 똑 같은 장관의 풍경만이 침묵하며 허공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무간을 비집고 코스모스의 비밀을 탐독하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활화산을 음미하고 있었다. 작가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당시 어둠에 쌓여있는 가난한 동네에서 유독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자랐다. 별이란 무엇 인가. 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광막한 우주공간에 흩어져 내 머리 위에서 나의 발길을 밝혀주는 것일까.

작가란 생명의 음악을 악보에 옮겨 적는 작업이다. 우주는 자연과 생명의 어머니인 동시에 은하와 별과 문명을 멸망시키는 파괴자이기도 하다.

우주 앞에서 우리의 생명, 인생, 문명, 역사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이다. 은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2만 5천 광년이고 이를 한 바퀴 도는데 2억 5천만년이 걸린다. 태양의 나이 50억년이니 현재까지 태양은 은하의 중심을 20번 정도 완주했다.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돌고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장구한 세월의 인내 없이는 해변의 모래밭은 탄생하지도 않았고 기암절벽과 사막은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이는 우주가 인류보다 훨씬 오래 되었음을 가르쳐준다. 우주의 시간은 360만 년 전의 빅뱅, 46억 년 전의 태양의 생성, 그리고 150억 년 전 수소의 재에서 시작한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인류는 광막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기원 전 7세기부터 5세기 까지는 이오니아와 그리스 출신의 과학자들이 많은 업적을 일궜다.

알렉산드리아는 서구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였다. 많은 지성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현대과학의 씨앗이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뿌려졌음에도 서구문화는 그 후 1000년이나 지속된 암흑세계에 빠져들었다. 기원 후 415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된 후 암흑시대를 맞은 인류는 1517년 마틴 루터가 당시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의 오류를 지적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부활하게 된다. 콜럼버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코페르 니쿠스, 케플러, 뉴턴, 아인스타인 등을 맞아 현 시대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과학은 순풍을 맞고 있다.

역사가들은 인류가 암흑시대에 빠져든 이유가 과학적 발견과 지식이 일부 기득권층의 소유물로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 당시 왕의 흥미만 자극하고 자신들의 명망 얻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 본다.

우주의 대폭발, 은하와 별의 탄생, 초신성 폭발, 지구 생명의 탄생 그리고 과학기술과 문명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아주 간단한 원소의 집합체들로 작은 지구위에서 10억분의 1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반짝하다 사라지는 미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겪는 아픔과 고통, 슬픔과 절망도 순간적이고 반드시 지나간다. 우리의 생은 너무나 찰나여서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사랑하며 살아라" 하는 그의 외침이 울린다
 



찰나의 어원

인생은 찰나같이 짧은 시간이다. 그렇다. 찰나는 아주 짧고 빠른 시간을 비유할 때 종종 쓰이는 말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면 어느 정도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찰나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

이 '찰나()'는 산스크리트 어의 '크샤나'를 음역한 아주 짧은 시간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찰나같은 인생을 영원한 인생으로 바꾸는 것이 불교 철학이다. '찰나()' 또는 '차나()'라고도 표기하며 '일념()'이라는 뜻으로 번역한다. 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을 일념()이라고 하고 발의경() 혹은 생장()이라고도 한다. 극히 짧은 시간, 순간, 시간의 최소단위를 말한다. 찰나를 현대 시간으로 환산을 하면 '75분의 1초'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관념에서는 느낌조차 없는 그런 상태이다.

가령 불교경전 〈대비대사론〉에는 찰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어느 날, 가는 명주 한 올을 젊은 사람 둘이서 양쪽 끝을 당기고 칼로 명주실을 끊었더니, 명주실이 끊어지는 시간이 64찰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120찰나라고 한다. 120찰나는 단찰나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사람이 손가락을 한번 튀기는 사이()에 65찰나를 계산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탄지시의 65분의 1을 1찰나라고 한다.

찰나()에 대해서는 불교론서 〈구사론()〉의 이론과 〈승기율()〉의 이론이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하루는 30모호율다()이고 1모호율다는 30납박()이다. 1분 60초로 환산하면 0.013초에 해당한다. 〈승기율〉의 시간 계산으로는 1념이 0.018초라고 한다.

모든 존재가 찰나에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데 계속적인 생멸현상을 찰나생멸이라고 한다. 사물의 무상한 궁극적인 모습을 일기()생멸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현재의 1찰나를 현재라 하고, 전찰나를 과거, 후찰나를 미래라 하며, 이 셋을 합하여 찰나 삼세()라 하였다. 시간의 개념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불교도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찰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박문사)


이 순간 당신과 함께함이 .......... 굿럭


 

금원산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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