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교를 갖기 원한다. 또 사람들은 종교 생활을 즐긴다. 그래서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느냐고 물을 경우 서슴없이 대답한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교회 다니는 사람(무슨 교회든 상관없이)의 숫자가 1,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대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밤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의 성도들을 데려가실 경우 한 사람도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휴거를 믿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휴거될 자격인 구원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종교 생활을 하게 된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이들에게는 종교 생활 자체가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며, 꼭 휴거되어야 한다는 신념도 없다.
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교인들)이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고 있기에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교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교회 성장을 자랑하는 이런 교회들 때문에 배교의 파장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먼저 규칙을 배우라
규칙이 없는 경기는 없다. 선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경기하는 선수는 실격된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법보다 엄격한 하나님의 법이 있다. 이 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태어나지 않았는데 활동할 수 없듯이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걸어다니고 일을 해도 하나님께는 죽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생각과 발상, 즉 자기도 종교를 갖고 종교인의 생활을 해 보려는 것은 자기 기분일 뿐 믿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생활을 똑바로 하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규칙을 배워야 한다.
그 규칙이란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더니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믿음이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2). 이 규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말이다. 『이제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우리들 때문이기도 하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을 믿는 자들이라』(롬 4:23-24).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사람 안에 성령님께서 거처를 정하신다(고전 3:17; 6:19,20). 이 사람은 제멋대로 소위 종교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규칙을 벗어나서 제멋대로 믿으려 하면 ‘얘야! 그것을 하면 안 돼!’ 하시거나 ‘그것은 교회가 아니야!’, ‘그것은 내 말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 ‘그런 방언 같은 것은 악령이 하는 것이지 내 역사가 아니야!’ 하고 제동을 거시며 일깨워 주시기 때문에 헛된 짓을 할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성령이 내주하지 않은 사람은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주님 때문에, 주님이 좋아하시니까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거짓말을 못하게 하며 속임을 당하지도 못하게 하신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음이라.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7,8).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으면서 종교 생활을 하려는 것은 한갓 유희(놀이)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교회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자의 삶은 자기부인에서 시작된다
믿음의 실체는 말씀을 믿는 것이며 말씀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의 생의 다음 단계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교인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부인하는 데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교육받고 성공하려는 것은 남에게서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반대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십자가를 지고,그것도 매일 지고 따라야 된다고 하셨다(마 16:24, 막 8:34, 눅 9:23). 뒤집어 말하자면, 제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자신을 부인할 필요도, 십자가를 매일 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종교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인 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협소하여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모든 영적 부조리는 성경을 믿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이 세상은 악하기에, 또 모든 제도는 세상 신인 마귀가 주관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도 하지 않으셨다(요 17:9). 그런데 소위 교회라는 것을 만들어 이 세상 일에 참여하고, 교인들에게 이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고, 이 세상에서 오래 살 것처럼 가르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소위 교회라는 곳이 교인들에게 다가올 대환란을 겪을 것을 대비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데도 그들은 재앙에는 대비하지 않고 교회 놀이만 하고 있으며, 말씀은 배제한 채 ‘우리 교단 교리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은 영적인 것’이다, ‘이 땅에 1천 년의 평화가 지속된 후에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등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편리한 대로 성경을 고치고 해석하며 교회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 롯, 그리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
노아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충만함으로 인하여 세상을 멸망시키실 결심을 하셨다(창 6:5-7). 그때 의로운 사람 노아의 구원을 위해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셨는데,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였다. 산에서 큰 상자 배를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는 비정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멸망을 전파하였으나 사람들은 그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일만 했다. 드디어 비는 내렸고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하고는 그들 모두 몰사해버렸다.
롯의 때에는 죄로 충만한 두 성읍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경고받았으나, 그들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죄 짓는 일에 급급했다. 이번에 하나님은 의로운 롯(벧후 2:7)을 구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방주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소알로 피신시키신 후 하늘로부터 유황불을 내리시어 소돔과 고모라를 진멸시키셨다.
이제 우리 시대에 우리는 세 번째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 이번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하셨다(마 24:21). 하나님의 심판은 늘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이다. 『이방인들의 충만함[죄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롬 11:25). 이 세상은 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왔으며, 주님은 이번에도 의로운 사람만을 구출하실 것이다. 이번에는 방주로도 아니요, 다른 도시로도 아니고, 공중으로 들어 올리시는 것이다. 이것이 휴거이다(살전 4:13-17). 성경에서는 그 다음의 경고는 없다. 성도들이 모두 들림을 받고 나면 이 땅에는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만 다녔던 교인들과, 목자를 자처하며 교인 수를 가지고 교회 성장을 자랑했던 사람들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심을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추종했던 자들이 남게 될 것이며, 그때부터 이 지상에서는 다니엘의 70째 주라고 하는 대환란이 시작될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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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유희 (1)
Divergence
2006/07/18 20:02 (211.18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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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유희 (1) 이송오 목사 [조회수 :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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