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교 템플이 ‘보충적인 진리들’이라고 불렀던 것을 프로테스탄트 개혁주의자들은 ‘오류들’이라고 말했다. 이 ‘오류들’은 성도들이 그것에 반대했을 때 그들을 박해하고 종교재판소에 넘기고, 순교당하고 이단이라는 죄목을 씌우게 했던 것들이다.
1885년에 라일(J.C. Ryle) 감독은 “이러한 것들은 로마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로서, 영국 교회의 39개 조항은 아홉 번이나 분명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없는 표현으로 그것들을 저주했다.”고 썼다.
현재 개신교의 더욱 심한 문제는 16세기부터 그 ‘오류들’이 개신교 안으로 들어와 혼합되었다는 점이다. 트렌트 공회 때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제정한 원칙들은 뒤를 잇는 교황들에 의해 계속해서 재확증됐으며, 여기에는 오늘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포함된다. 그러나 거기에 첨가된 세 개의 새로운 교리가 있는데, 교황의 무오류성(Pa- pal Infallibility, 1870), 무염시태(Imm aculate Conception, 1854), 성모 마리아 몽소승천(the Assump tion into heaven of Mary, Mo- ther of God' 1950) 등이 그것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제 2차 바티칸 공회는 로마 교회의 교리 중 어떤 것도 철회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도록 권하지도 않았다.
구원
구원에 관한 교리는 모든 교리적 분열을 가져온 근본적인 문제이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로마 교회에 따르면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한다.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 은혜는, 그들의 말을 빌면, 성사들(sa- craments)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즉 더 많은 행위와 의로운 삶이 있어야 하며, 이는 고행과 연옥, 완전한 속죄 등의 교리로 이어지게 된다. 또 그들은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에게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톨릭 교리문답서는 영세성사는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우리의 혼에 새로운 생명을 주며,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세례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제 2차 바티칸 공회는 1301년에 교황 보니파스 8세가 공표한 이래 오랫동안 지지되어 온 “엑스트라 에클레시암 눌라 살부스”(로마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라는 교리를 확증했다. “오직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얻을 수 있다. 구원받기 위해서 모든 사람은 카톨릭 교회에 속해야만 한다.” (새[新] 성 요셉 발티모어 교리문답 : 카톨릭 출판사, 뉴욕 1968)
루터는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부인했다. 그는 행위 없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교회의 존망을 결정짓는 교리”라 불렀으며, 그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로마 교회가 구원의 성경적 교리를 부인함으로써 올바른 교회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상실했으며 구원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버렸다고 믿었다.
켄터키 루이스빌에서 ‘카톨릭 신자들을 복음화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임’(Christians Evangelizing Cathol- ics)을 담대하게 이끌고 있는 빌 잭슨(Bill Jack- son)은 오늘날 동일한 확신으로 이렇게 말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를 없애 주시는 완전한 죄의 용서는 사제의 면죄와 반복적인 고해, 고행과 선행 등으로 대체되었다. 뿐만 아니라 죄를 깨끗케 하며 자유케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에 관한 진리와는 완전히 반대로 죄 지은 사람을 죄의식 안에 가두며 묶어두고 있다.”
복음의 핵심인 은혜의 위대한 교리가 땅에 떨어졌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8,9).
뛰어난 지성과 학식으로 무장한 위대한 신학자였던 루터는 하나님을 찾고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한 길고도 고통스러운 연구 끝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주님을 만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탄생이 참으로 단순하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17, 10:9).
미사
로마 카톨릭 교리의 핵심은 미사, 즉 성체성사이며, 제 2차 바티칸 공회에서는 이를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케 해 주는 샘이요 정점”이라고 표현했다. 뛰어난 카톨릭 신학자이자 미네소타에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 및 문화 연구원’ 원장인 킬리안 맥도넬(Kilian McDo- nnell)은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뚜렷한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성체성사임을 주장한다. 그 예로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주요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들이 그들 삶의 중심을 성체성사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부흥운동 지도자인 매리 맥카디(Mary McCarthy)는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내 생활 방식이 되어버렸다. 미사를 통해 나는 그리스도와 그 분의 가르침을 증거하는 데 필요한 힘을 공급받는다.”라고 고백했다(K. Ranaghan, op. cit. p.32).
로마 카톨릭은 미사가 하나의 “희생제사”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을 빌면 미사는 “십자가에서 있었던 희생제사와 동일한 것으로서, 피흘려 죽임당한 제물로서 하늘의 아버지께 자신을 바치셨던 그리스도께서 제단 위에서 사제들의 손을 통해 피없이 자신을 계속해서 바치시는 것”이다(기독교 교리문답 6- 278 : 카톨릭 진리 협회, 런던 1985). 로마 교회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달려 있는 그들의 십자가가 말해주듯이, 영원한 제물이다. “다 이루었다”라는 그 분의 말씀은 그 분의 희생제사가 끝났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지상에서의 생을 마감하신 그 분은 이제 영원한 제물로서 자신을 바치고자 하신다. 이 제사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죄를 위한 것이고, 성병(聖餠)과 포도주는 실제적인 살과 피로 변한다. 사제의 손을 통해 이같은 “실제적 임재” (the real presence)가 일어나는 것이다.
카톨릭 백과사전은 소위 “화체설”(transu- bstantiation)로 알려진 이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성체성사시에 빵과 포도주의 본질은 남아있지 않는다. 빵과 포도주의 겉모양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빵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본질은 그의 피로 완전히 변한다....그리스도 실재의 전체성이라는 교리는 ‘그리스도 전체의 각 부분들, 즉 살과 피, 몸과 혼, 신성과 인성이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카톨릭 백과사전, 제 4권, p. 299 & 제 14권, p. 586)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사제는 마태복음 26:26의 “호크 에스트 코르푸스 메움”, 즉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이제 “그리스도 전체가 된” 성병을 그가 들어올릴 때 바로 그리스도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은 미사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전직 로마 교회의 사제였던 루터는 미사가 “말할 수 없는 가증스러움이며,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중요한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고, 칼빈은 이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만찬을 짙은 흑암으로 변질시키고 덮어버리려는 사탄의 시도”라고 말했다.
크랜머(Cranmer) 또한 그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은 사악한 카톨릭 사제들, 우상숭배자들, 수도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가장 거룩한 주의 만찬을 명백한 우상숭배로 바꾸고 변질시켰다. 따라서 모든 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항하는 그 모든 신성모독적인 행위를 온 마음을 다해 거부하고 증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트렌트 공회는 그같은 종교개혁가들의 주장에 대해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 입각해 답변했다. 그리고 그 답변은 아무런 타협없이 오늘까지 그대로 있는데, 그 형식은 변했으나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제 2차 바티칸 공회(1962-65)는 전자를 확인하고 있다.
“만일 누구라도 미사시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참되고 온당하며 대속적인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것이 아
니라고 말하거나, 드려지는 것이 그리스도 자신으로서 그 분을 우리가 먹는 것, 즉 거룩하게 변화된 것(화체설)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만일 누구라도 그것을 ‘나를 기념하여’라는 말로 표현한다면...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트렌트 공회 이후에 미사는 그 본질상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1985년도 카톨릭 진리 협회 발행 책자 “미사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나?”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제 2차 바티칸 공회와 교황 바오로 6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새로운 전례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의식의 방법, 즉 전례서뿐이다. 새로운 미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 2차 바티칸 공회는 미사 때 쓰이는 언어는 달라졌을지언정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복된 성사
1988년도에 역시 카톨릭 진리 협회에서 발행한 한 책자는 카톨릭 신도들에게 “복된 성사”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성체성사가 보존된 주된 목적은 병자의 성체 배령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으로 일단 성사가 보존되었다면 성사를 통해 현존하시는 주님을 경외하고 숭앙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외적인 성사를 중점으로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은 항상 우리를 성체성사의 실제적 의식을 향한 더욱 깊은 사랑과 주님의 몸과 피의 교제 안에서 더욱 효과적인 영접으로 안내해 준다. 성체성사의 본질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성사 및 성체성사에 대한 카톨릭적 개념은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가 자신의 수상집에서 한 설명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그 분은 사제가 두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는 그처럼 작은 빵 조각으로까지 자신을 낮추시어 영원토록 성합[성체를 담는 용기-역자주] 안에 거하시니 말입니다.”(「마음의 고요함 가운데」 테레사 수녀, 1983)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로오 2세가 제 2차 바티칸 공회를 소집케 한 장본인이라 말하는 19세기 신학자 존 헨리 뉴만(John Henry Ne- wman) 추기경은 이 복된 성사를 그 무엇보다도 신뢰하였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낄 때,” 그는 1875년에 그의 벗이었던 수사 암브로스 성 요한이 죽자 이렇게 말했다. “복된 성사를 통해 주님을 가질 수 있다면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기 직전에 미혹과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셨다. 올리브 산 위에서 행하셨던 설교에서 주님께서는 정확하게 경고하셨던 것이다.
『그 때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예수님께서는 다락방에서 그 분의 쪼개진 몸을 상징하기 위해 빵을 나누어주셨지 둥근 모양의 성병을 나누어주지 않으셨다. 1858년에 완전히 출간되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저서 「두 개의 바빌론」의 저자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은 “‘둥근’ 성병의 ‘둥근 모양’이 로마 신비종교에서 그렇게도 중요했던 이유는 그것이 바알 즉 태양신의 또다른 상징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히슬롭은 또한 “뿐만 아니라 바알의 숭배 의식에서 그 태양의 형상은 제단 위에 높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배교하던 때 우상숭배하던 관행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라고 덧붙였다(대하34:4).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저술가 랄프 우드로우(Ralph Woo- drow)는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커다란 제단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95피트 높이의 기둥에 관해 설명한다. 각 기둥의 꼭대기에는 이교도들의 우상숭배에 사용되던 것과 동일한 태양의 형상이 달려있다. 벽의 위쪽 높이에도 매우 크고 금으로 된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 태양상이 있는데, 이는 바빌론의 대신전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이 빛을 내뿜는 모습의 태양은 카톨릭의 성체안치기에 있는 태양상과 똑같다. 그 안에 카톨릭 신도들이 무릎꿇고 절하는 “주님”이 “태양”으로서 안치되는 것이다.
그와 유사한 태양상들이 파라오들이 통치했던 이집트의 신전의 제단 위에서 발견되었다. 제단에 새겨진 문구는 고대 신비종교의 얇고 둥근 케익이 모든 제단 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히슬롭은 이 케익이 하늘의 여왕에게 바쳐지는 것으로서,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어머니 여신에게 바쳤던 “피없는 제사”임을 입증했다(예레미야 7:18).
히슬롭은 “이집트에서 신성한 상징으로 빈번하게 사용된 원판은 태양을 상징했다.”고 썼다. “육화한 태양신 오시리스는 자신의 생명을 인간을 위한 희생제물로 내놓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혼에 생명과 영양이 되기 위해서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곡식’으로 상징된 이 아들신은 이집트의 위대한 여신의 신성한 신탁에 따르면 육화한 태양신이었다. ‘어떠한 인간도 내 베일을 들추지 못했다. 내가 낳은 열매는 태양이다.’ 이 육화한 신이 하나님의 빵으로 상징되었다면 그를 태양과 동일시하기 위해 둥근 웨이퍼로 그를 상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두 개의 바빌론」 알렉산더 히슬롭 - 3부, 미사의 희생제사 : 로이조 브라더스, 넵튠, 뉴 져지 ; 「바빌론 신비종교」 랄프 우드로우, 17장; 랄프 우드로우 복음주의 협회,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92502). BB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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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의 교리와 미사(1)
Divergence
2006/07/15 16:41 (211.186.***.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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